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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의 현장서 200년 전에 초연된 ‘세비야의 이발사’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이탈리아/로마(Roma)

로마의 중심 캄피돌리오 언덕 북서쪽으로는 평지가 펼쳐지는데 이곳의 옛 이름은 ‘군신 마르스의 들판’이란 뜻으로 캄푸스 마르티우스(Campus martius)였다. 이곳은 고대 로마 초기에 로마군 훈련장으로 쓰던 곳이었다.

이 지역에는 라르고 디 토레 아르젠티나(Largo di Torre Argentina)라고 하는 광장이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1927년에 발굴된 로마공화정 시대(기원전 509-기원전 27)의 신전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이곳은 폼페이우스(기원전 135-기원전 87)가 세웠던 로마 최초의 반원형 극장이 있던 곳으로 기원전 44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공화정 시대의 신전 유적과 그 뒤에 보이는 아르젠티나 극장.
공화정 시대의 신전 유적과 그 뒤에 보이는 아르젠티나 극장.

신전 유적터의 서쪽 편에 있는 아르젠티나 극장은 겉모습이 수수하여 눈에 별로 띄지 않는다. 이 극장은 오페라 공연을 위해 1732년 1월 문을 열었으니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오래된 극장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 극장 건물 블록 바로 옆에는 ‘비아 데이 바르비에리’(Via dei Barbieri)라는 골목이 있다. 번역하면 ‘이발사들의 길’이다.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은 15세기 중엽에 이 골목에 이발소, 향수가게 등이 몰려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발사’라고 하면 아르젠티나 극장과 관계된 역사적인 공연을 빼놓을 수 없다. 다름 아닌 롯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가 지금부터 200년 전인 1816년 2월 20일에  바로 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던 것이다. 

아르젠티나 극장 옆 골목 ‘이발사들의 길’.
아르젠티나 극장 옆 골목 ‘이발사들의 길’.

롯시니의 오페라 중에서 <세비야의 이발사>는 최고의 희극 오페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이 오페라의 원작은 프랑스의 보마르셰(1732-1799)의 희곡이다. 

보마르셰의 작품은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세비야의 이발사>, 2부는 <피가로의 결혼>, 3부는 <죄 많은 어머니>이다. 그러니까 1786년에 작곡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2부에 해당되고 30년 후 롯시니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는 1부에 해당한다. 

보마르셰의 연극 <세비야의 이발사>는 1775년 파리에서 초연되었을 때 실패로 끝났으나 1주일 만에 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으로 바뀌었다.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이발사이지만 아무리 귀하신 몸이라도 그 앞에서는 모자를 벗어야하고 이발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당시 억압받던 민중들에게 비친 극중 이발사 피가로의 행동은 통쾌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혁명의 기운이 움트고 있었으니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프랑스 시민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수수한 외관의 아르젠티나 극장의 야경.
수수한 외관의 아르젠티나 극장의 야경.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기 이전인 1782년에 조반니 파이지엘로(1840-1816)가 작곡해 이미 널리 잘 알려져 있었다. 또 그 후에도 몇몇 다른 작곡가들이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사실 당시에는 같은 제목으로 다른 오페라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한편 음악가로서 롯시니는 모차르트처럼 보기 드문 천재였다. 그는 악상이 떠오르면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악보에 써내려갈 정도였으며 곡을 쓰는 속도는 숨이 가쁠 정도로 빨랐다.

1816년, 당시 24세의 젊은 로시니는 새로운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했는데 수백 장이 넘는 오페라 악보를 쓰는데 20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롯시니는 이 작품을 아르젠티나 극장에서 초연할 때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은 아마 평생 동안 잊지 못했을 것이다. 

아르젠티나 극장의 화려한 관객석.
아르젠티나 극장의 화려한 관객석.

파이지엘로의 사주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공연 도중에 일부 관중들이 소란을 피워대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들은 무대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고 가수가 노래하는 것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첫 공연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파이지엘로와 그의 제자들은 새파랗게 젊은 로시니가 대선배 파이지엘로의 아성에 도전하듯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한 것은 매우 괘씸하고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하여튼 그 사건으로 인해 롯시니는 하룻밤에 갑자기 늙어버릴 정도로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하지만 남으로부터 시기를 받을 때는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아니 기뻐해야 한다. 시기한다는 것은 부러워하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해 시기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롯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보마르셰의 연극이 그랬던 것처럼 두 번째 공연 때 크게 성공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국경을 넘어 1818년에는 영국에서, 1819년에는 미국에서까지 공연되는 등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니 경쟁자들의 시기를 받을 만도 했다.

파이지엘로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서서히 잊혀지고 말았고 롯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다.  그런데 아르젠티나 극장은 현재 오페라 공연장이 아니라 연극 공연장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세비야의 이발사> 200주년 기념공연을 이곳에서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좀 아쉽다.

정태남

◆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2016.05.10 정태남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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