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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면 공무원들에겐 ‘안됩니다’란 말 없지 말입니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의 소극행정 타파기

〔정책기자단/신광태〕“왜 스스로 무덤 파는 짓을 하느냐?”

느닷없이 지인 한 사람이 내게 말했다. “대체 뭔 소리냐?”라고 짐짓 모른 체 했지만, 그가 말하는 의도를 안다. 밴드 때문이다. 

밴드 개설, 주민들과의 소통이다.
밴드, 주민들과의 소통이다.


지난 3월초, 밴드를 개설했다. ‘사내면 사람들’이란 이름도 붙였다. 면사무소에서 주민들에게 알릴 사항을 비롯해 주민 불편사항 등 민원을 접수받는 게 주된 목적이다. 면민들 간 경조사나 유용한 정보제공 마당으로도 활용한다. 개설 일주일 만에 15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했다.

‘며칠 전 비에 떠내려 온 흙으로 차량 운행이 불편하다’,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에어로빅 시간을 늘려 달라’ 등 다양한 의견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현장에 나가 즉각 처리를 지시하고 프로그램 조정 협의도 마쳤다. 밴드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일들이다. 전화나 면사무소 방문을 통한 민원제기는 번거롭기도 하고 시간도 낭비된다. 면장실을 방문해 장황한 설명을 하느니 밴드를 통해 현장사진 한 장 올리는 것 만으로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다.

지난해 우리지역에 작은 극장이 생겼다. 농촌마을 주민들은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전화로 확인하거나 일부러 극장까지 나와야 알수 있다. 프로그램 변경 때마다 안남희 ‘토마토시네마’ 관리사는 밴드에 공지한다.

직원들을 소집, 긴급회의를 열었다. 밴드에 올라온 민원 때문이다. 직원들은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들이다. ‘왜 규정에도 없는 것을 만들어 번거롭게 하냐’는 눈치다. 의무적으로 직원들 가입을 지시했다. 면장인 내가 일일이 답 글을 올리는 것 보다 담당자 말이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민원인 입장에서 생각하자 

밴드를 개설했습니다. 주민들과의 소통입니다.
‘안됩니다’란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주민들과의 약속이다.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 직원들과 상의를 자주한다. 내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 있고, 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일방적으로 저질렀다.

‘정답고 소중한 이웃, 행복한 사내면’

면사무소 앞에 걸렸던 구호다. 이 글귀를 보고 행복을 느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 또한 ‘정답고 소중한 이웃이 있어 행복하다’란 생각을 한 적 없다. 문구가 다분히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주민들 피부에 와 닿는 어떤 글귀가 없을까’란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한밤중, 잠결에 무심코 떠오른 생각. 벌떡 일어나 메모를 했다. 그래서 바꾼 게 ‘사내면 공무원들은 안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란 글귀이다. 

반응을 보기 위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많은 사람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반응을 보기 위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많은 사람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농촌마을 할머니 한분이 20여리 떨어진 면사무소를 방문했다. 걸어오다 보니 2시간은 족히 걸렸다.

“신청기간이 지난 건 알고 있는데, 노인 일자리 하나 만들어 주면 안 될까요?”
“아니, 시간을 충분히 드렸는데, 이제 와서 그런 말씀 하시면 어떻게요. 안되니까 돌아가세요.”

위와 같은 가정을 했다. 할머니는 얼마나 힘이 빠지겠나. 힘없이 터덜터덜 두 시간 동안 오던 길을 걸어서 귀가하실 할머니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

안되는 게 맞다, 아니 규정상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면전에서 그렇게 말해선 안된다. “어려운 일이지만, 제가 충분히 알아보고 전화 드릴게요” 라고 했다면 그나마 할머니는 기대감을 가지신다.

“무조건 법이나 규정이란 잣대를 들이대 ‘안된다’고 하지 말자. 한번쯤 대안을 찾아보자는 거다. 그래도 정 방법이 없거든 전화로 말씀 드리지 말고 직접 찾아뵙고 정중히 말씀 드려라. 반드시 다음번엔 가정먼저 생각을 해드리겠다 라는 말도 빼 놓지 마라.”

직원교육 중 했던 말이다. “‘우리 사내면 공무원들은 안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란 말은 구호가 아니다. 주민들과의 약속이다.”란 말도 덧붙였다.

작년 8월 화천군 사내면장으로 부임한 이후 매번 친절을 강조했다.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민원인에게 ‘의자를 권유했다’, 기역자에 가까울 정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는 것으로 ‘친절했다’ 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민원인 입장에선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절대로 ‘안됩니다’란 말을 사용하지 말자고 했던 이유다.

소극행정 공무원, 파면까지  

지난 3월7일 인사혁신처에서 발표한 내용 [출처-인사혁신처 보도자료]
인사혁신처 발표 내용.(출처=인사혁신처 보도자료)


‘국민에게 피해주는 소극행정 공무원, 공직 퇴출!’

지난 7일, 인사혁신처에서 공직사회의 소극행정을 엄단하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공직문화 조성을 위한 ‘공무원 비위사건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주요내용은 부작위, 직무태만 등 소극행정으로 안전사고를 유발하거나 국민불편을 초래한 경우 행위 공무원은 물론 지휘 감독자도 엄중한 문책을 한다는 내용이다.
 
소극행정 비위(법에 어긋남)에 대해선 징계 경감을 할 수 없도록 하고, 고의성이 있는 경우 최대 파면까지 가능하며, 비위 정도가 경미한 경우도 경고·주의 처분을 받도록 해 소극행정 역시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강조했다.

아울러 적극적인 행정 과정에서 발생한 과실에 대해선 징계를 경감하는 내용을 부각해 공직자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일하는 문화가 뿌리 내리도록 했다.

처음부터 안되는 규정만 찾는 공직자도 있다고 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감사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공무원도 있단다. ‘어떤 사업을 하겠으니 사업비를 반영해 달라’고 예산부서와 싸우던 것도 옛말이 됐다.

제도적 장치는 마련됐다. 이젠 적극행정을 위해 공직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형식적 구호가 아닌 실현 가능한 메시지 전달은 필수다. 국민들의 어려움을 찾아내 그들의 생활속에 깊숙히 파고드는 밀접행정이 요구되는 시기다.  

금번 인사혁신처에서 공직문화 쇄신을 위해 칼을 빼 든 것은 매우 시기적절하단 생각이다.




종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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