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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봄을 이야기하며 쟁기를 들자

최영일 시사평론가

긴 겨울이 갔다.

지난 겨울은 유별나게 스산하였다. 스산했던 것은 몸이었을까, 마음이었을까?

겨울이란 본시 춥고 황량하여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위축 되게 만드는 것은 자연의 이치. 그러나 지난 겨울이 더 길고 더 스산하였던 것은 우리의 사회공동체가 극심한 혼란의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갈래의 목소리들이 추위를 무릅쓰고 터져 나오고 울려 퍼지고 했지만 어쨌든 이제 그 결과는 종착점에 도착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전해진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 사회도 공동체의 문명으로 진화 시켜 온 법, 제도, 규범, 그리고 상식 등 공정하기 위한 절차적 노력을 기울여 한 매듭을 지었으니 이제 우리 모두는 이 귀결을 받아들이고 더 본질적이고 생산적인 과제를 위해 새로운 여정에 나서야 한다.

지난 3월 10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국민담화.

“생각과 방식은 다르지만 촛불을 든 분도, 태극기를 든 분도 모두 애국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마음이고 태도이다.

이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곳은 미래가 되어야 한다.

세부적인 사안들, 미시적으로는 풀어야 할 후속작업들이 아직 많다는 분들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큰 결정이 내려지면, 이미 전문 분야가 고도화 된 우리 사회는 전문기관과 담당조직이 공공의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를 작동한다.

그렇다면 공적으로는 ‘국민’이고 사회구성원이자 사적으로는 ‘개인’이며 생활인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매우 중요한 일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 그것은 일상을 복원하는 일이다.

우리의 일상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건강을 지키고, 가족을 돌보고 소통하고 사랑하고, 일터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생산과 경제에 기여하며 그 댓가로서 자기를 계발하고 즐기고 누리며 관계망으로 연결된 타인과 협업 하면서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며 더 나은 내일을 실현하기 위한 생활의 사이클을 잘 유지 해나가는 것이다.

생명의 거대한 순환 속에 한 개체로 태어나 사실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

그러므로 지금까지 지내온 겨울의 터널은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한 성장통이었음을 깨닫자.

아픔의 경험 없이 자란 아이는 타인에 대한 공감이 깊이 무르익지 못하여 철없는 어른이 된다. 아픔의 역사 없이 흘러온 국가, 사회, 공동체는 미래에 대한 통찰이 발달하지 못하여 그 기반이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이야기를 성장기에 어른들로부터 참 많이 들어왔다. 이것은 한 개인 뿐 아니라 국가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우리 맛을 내는 발효식품인 각종 ‘장’의 맛이 춥고 더운 기후를 거치며 깊어지는 전통문화처럼 우리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외부로부터, 또 내부로부터 참 다양한 고난을 극복해 온 공동체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래도, 결국 자연의 이치처럼 우리네 삶에도 봄은 꼭 돌아왔고, 인고의 미덕은 꽃을 피워왔다. 그렇게 또다시 봄이 찾아온 것이다.

기상청의 정보를 보니 자연의 날씨는 3월의 중순부터 봄이라고 한다. 이 봄볕을 만끽하기 위해 우리 조상님들은 추운 날씨에서부터 ‘입춘대길’을 써 붙여 봄에게 길을 알렸고, 우수에 눈이 비로 바뀌는 것을 관찰 했으며 경칩에 개구리를 찾아보고 했던 것 아닐까. 기다림의 미학.

기상청 소식을 듣고 필자는 연구실 봄 청소를 했다. 겨우내 묵은 먼지를 털고 쓸고 닦고, 서가를 정리하니 채 읽지 않고 덮어둔 책이 한무더기였다. 쓰지도 않은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고 필요한 친구와 나누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다시 한 번 삶을 달릴 시동을 걸려고 한다.

그리고 보니 할 일이 참 많다. 결정되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준비할 시간을 참 많이도 실기 했다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적기라는, 흔한 격언도 있지 않던가? 지금이라도 출발하면,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내디디면 미래를 그만큼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이다.

쟁기를 든 농부는 뒤 돌아보지 않는 법. 사회생활 초년기 직장의 대선배가 들려줬던 말이다. 이제는 절감이 된다. 농부의 마음으로, 겨우내 얼어 붙었던 땅을 갈아 엎고, 파종을 하고, 거름을 주고, 봄볕을 마음껏 쪼이도록 땀을 흘려보자.

우리 경제를 살려내야 하고, 우리 산업은 이미 닥쳐온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탈 수 있도록 새로운 헤엄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다시 풍요를 일구어 국가공동체와 우리 가족, 그리고 내 삶을, 일상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

행복. 함께 하는 행복이라는 열매를 그저 무지개처럼 먼 하늘의 구경거리로 팽개쳐두고 한숨만 쉬고 있지 말자.

스산한 겨울의 악몽은 지나갔고, 우리 앞에 봄이 왔고, 곧 우리는 봄꽃 한 가운데 놓여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봄의 향연에 주빈으로 참여하는 초대장은 마음의 창을 열고 일을 하는 방법이다. 이 봄을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치니 더 힘들어진다. 툭툭 털고 일어나 지금 함께 시작하자.

올 연초 유행어 하나가 많이 회자 되었으니 그것은 ‘근하신년’이나 ‘새해 복 많이 받아’가 아니라 ‘그대 꽃길만 걷길’이었다. 그래, 우리 함께 이 봄에는 꽃길만 걷자. 그런데 매일매일 나들이만 할 수 없으니 일하러 오가고, 가족과 이웃을 마중하고 배웅하고, 쉬엄쉬엄 산책하며, 즉 일상의 모든 순간에 꽃길만 걷자. 그렇게, 이제는 봄을 이야기 하자.

2017.03.14 최영일 시사평론가·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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